대기업 프리IPO에 처음 등장한 '리픽싱'…실효성 사라진 드래그얼롱 대체할까

입력 2023-07-19 17:40  

이 기사는 07월 19일 17:4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업들이 상장을 전제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온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IPO)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투자자들에 상장을 반대할 권리를 주지 않는 대신 공모가가 투자시 기업가치보다 낮으면 교환 비율을 조정해 추가 신주를 주는 리픽싱이 대기업들의 투자 유치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리픽싱이 보편화되면 유동성 활황기 프리IPO 시장의 문제로 꼽혀온 '기업가치 뻥튀기'가 일부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에 상장을 반대할 권한이 없는 데다 신주 지급에도 제한을 둬 보다 신중한 기업가치 산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SK·카카오 등 사례처럼 기업들이 프리IPO에서 무리한 기업가치를 산정하고 이로 인한 청구서로 투자자들이 후폭풍을 겪는 부작용도 적어질 것이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대형 프리IPO에서 사라진 '드래그얼롱'
1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벤처캐피탈(VC)의 스타트업 투자와 일부 코스닥 기업에서 쓰였던 리픽싱을 활용한 투자유치가 대기업 계열사들의 프리IPO에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대기업 중에선 지난 5월 IMM크레딧솔루션에서 6000억원을 조달하기로 한 KT클라우드가 이를 처음 도입했다. 브레인자산운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6000억을 조달할 예정인 SK팜테코도 이를 검토하고 있다.

리픽싱 방식의 투자유치는 투자자들에 일정 기간 IPO를 약속하는 점은 기존과 동일하지만 투자자들이 일정 기업가치에 상장하는 것을 반대할 수 있는 거부권은 부여되지 않는다. 대신 투자단가보다 공모가가 낮게 책정되는 경우 주당 가격을 낮춰준다. 그만큼 신주를 더 주는 식이다.

그동안 대기업 프리IPO에선 상장에 실패하면 투자자들이 일정 이자를 붙여 원금을 되사달라는 콜옵션을 행사하고 이를 응하지 않으면 대주주가 가진 지분까지 함께 시장에서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을 주는 방식의 투자유치가 주를 이뤘다. 혹은 투자자에게 일정 가격 이하론 상장을 진행할 수 없는 '거부권'을 주는 방식으로 투자유치가 이뤄졌다. 리픽싱을 활용한 프리IPO는 주로 스타트업의 투자유치나 코스닥 초기기업의 투자유치에서 활용됐다.

하지만 기업과 투자자간 극한 대치를 감수해야하는 드래그얼롱 조항의 현실성이 떨어지는 데다 투자자들의 거부권 행사로 상장 시장이 위축된다는 문제의식에서 리픽싱 도입이 검토됐다. 지난 5월 마무리된 KT클라우드의 6000억원 규모 투자유치를 진행한 KT 내 전략투자실이 해당 구조를 제시했다. 대주주와 투자자간 갈등으로 IPO가 좌초하고 장기간 회사의 경쟁력을 갉아먹은 선례들도 영향을 미쳤다. 유동성 활황기에 투자금을 받았던 SK그룹의 11번가, 원스토어와 CGV 해외법인, 카카오모빌리티, 쓱닷컴 등 청구서들이 속속들이 돌아오는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KT클라우드 대기업 첫 사례…합리적인 리픽싱 자리잡나
대기업들의 드래그얼롱 요건이 사라지면 기업가치 평가도 보다 현실화될 것이란 게 관계자들의 평가다. 2021년까지 저금리를 기반으로 이어진 유동성 활황기 시기 기업들은 상장시 몸값을 높이기 위해 프리IPO 단계에서부터 실제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요구해왔다. 투자 만기도 길게는 5년 이상으로 길다보니 나중에 돌아올 회수 부담보다 당장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것을 선호했다. 임원진들의 성과평가에도 이런 기조가 반영됐다.

투자자들도 유사시엔 콜옵션을 행사해 원금과 이자를 보장받는 대출 성격의 투자로 전환할 수 있어 면밀하게 기업가치를 검토하는 절차가 생략됐다. 펀드 자금을 빠르게 소진해 더 큰 펀드를 조성하려면 기업가치를 최대한 키우는 게 유리하다보니 '뻥튀기'된 기업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짙었다. 시장의 가격조정기능이 적당하지 않았던 셈이다.

합리적인 수준의 리픽싱이 보편화되면 투자사의 의사와 무관하게 상장이 진행되기 때문에 신중한 기업가치 평가가 요구된다. 투자자 입장에선 기업가치를 과도하게 고평가해 투자했다면 리픽싱 조항을 활용해 지분을 늘려 일부 손실을 줄이더라도 회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리픽싱은 코스닥 기업 수준과는 다르다. KT클라우드의 투자 유치에선 리픽싱 기준도 추후 공모가격이 아닌 최초 투자금액에 일정 수준까지만 보장하는 방식으로 합의됐다. 코스닥 한계기업과 자금줄이 마른 스타트업들이 향후 예정 공모가의 70% 수준을 보장해주는 '묻지마 리픽싱'과는 다르다.

IB업계 관계자는 "일부 한계기업에서 왜곡된 방식으로 활용됐지만 성공적인 상장을 위해 대주주와 투자자가 협조해야할 부분도 구체적으로 계약서에 도입하고 거래소와도 리픽싱 조항이 상장 과정에서 영향을 미칠 점은 없는 지 협의하는 등 여러 보완점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IPO 시장 활성화 측면에서도 긍정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사 입장에선 투자 시기보다 낮은 공모가에 상장하더라도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고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노력을 통해 상장 이후 수익률을 회복할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반주주들과 이해관계도 일치된다는 게 IB업계의 관측이다.

PEF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선 FI들에 아예 풋옵션을 주거나 리픽싱으로 위험방지조항을 마련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한국에서 PEF를 대상으로 풋옵션 제공이 금지되면서 이를 우회한 콜옵션과 드래그얼롱이 일반적으로 쓰였는데, 후폭풍이 하나둘 감지되면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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